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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무덤

망고

 

 

 

* 화재 관련 요소가 있습니다.

* 구마의식 고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화평은 모태구의 세상을 이루는 전부였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모태구와 윤화평을 처음으로 만난 날은 새벽어둠이 짙게 깔린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어느 날이었다. 수녀님. 구마의식 좀 도와주세요. 한밤 중 수녀원까지 찾아온 문 신부님과 오 신부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묵주와 성경만을 간단히 챙겨 그들을 따라나섰다. 급하게 출발하는 차에 올라타, 기도를 읊으며 묵주를 감싸 쥐었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달빛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악마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환영이었다. 보통 악령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예감이 좋지 못했다.

 

부마자가 있는 곳은 성당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였다. 동해 바다는 너무 깊고 차가워서 바닷바람마저도 시리게 다가왔다. 한 겨울이 아님에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뼈가 시렸다. 나는 그 곳에서 둘을 처음으로 만났다.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어있는 모태구와, 엉망진창으로 칼에 찔려 있는 부마자 윤화평을.

 

모태구는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려고 발버둥 치는 윤화평의 차디찬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악에 받친 목소리가 바다의 파도소리에 묻혔다. 상처투성이인 윤화평의 몸에서 베어 나온 핏물로 모태구의 옷은 제 색깔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끝내 그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가지 마. 날 두고 어딜 간다는 거야, 윤화평. 응? 나는 그 간절한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지금 와서야 곱씹어 보면, 단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저 처절한 사랑을 내가 구해줄 수 있을까. 이미 파편이 되어버린, 상처뿐인 두 사람의 관계를 악령으로부터 우리가 구해줄 수 있을까. 모태구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치던 윤화평은 문 신부님을 보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악령을 가두는 경經을 몸에 새겼어요.

― 괜찮습니다. 저희가…….

― 신부님.

― …….

― 구마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죽어야 해요. 이 지긋지긋한 악마랑 같이. 그렇게 말한 윤화평의 손에 들린 칼이 잘게 떨렸다. 윤화평은 입술을 깨물며 칼을 높이 쳐들었다. 피해요! 오 신부의 외침에도 모태구는 윤화평의 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칼에 찔린 모태구의 팔에서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모태구는 제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윤화평은 여전히 모태구의 품에 안긴 채, 다 쉬어버린 쇳소리를 내었다. 모태구. 그 이름은 윤화평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모태구는 윤화평의 부름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렇게 않게 자신의 팔에 꽂힌 칼을 빼, 바다로 던졌을 뿐이었다. 검은 파도 소리를 내며 울부짖던 바다는 단숨에 그 칼을 집어 삼켰다.

 

오 신부님은 영대로 윤화평의 두 손을 묶었고, 두 눈을 가렸다. 성호를 그리자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는 윤화평의 이마에 문 신부님은 망설임 없이 십자가를 대었다. 두 손이 결박당한 채, 울부짖는 윤화평을 뒤에서 붙잡은 모태구는 자신이 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제발. 제발, 윤화평. 가만히 있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모태구는 울었다. 화평아. 너무 떨려 끝이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윤화평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눈을 감고 구마경을 외웠다. 당신의 포도밭을 황폐하게 하는 저 짐승을 공포에 떨게 하소서. 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그런 나의 귓가에 모태구, 라고 쇳소리를 내던 윤화평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어른거렸다. 묵주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내終乃,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윤화평이 있었다. 윤화평의 웃음소리와 악령의 비명소리가 얽히고설켰다. 폐를 찢는 웃음소리에 기어코 신부님들의 입에서도, 나의 입에서도 울컥하고 피가 쏟아졌다. 손등으로 대충 피를 훔쳐낸 오 신부님은 마지막 남아있던 영대로 윤화평의 입을 틀어막았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구마의식이 막을 내린 건, 바다의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악령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급한 건, 부마자의 몸에서 악령을 구마하는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몸에 경을 새겨 악마를 가둔 윤화평도 죽을 것이 분명했다. 문 신부님은 모태구의 품에서 숨을 헐떡이며 몸을 꺾어대는 윤화평의 얼굴에 성수를 뿌렸다. 악령이 윤화평의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뒤이어, 입을 틀어막은 영대 사이로 윤화평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형체가 없는 언어였다. 문 신부님은 턱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마의식을 마저 진행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명한다. 너는 즉시 주님의 어린 양에게서 떠나라. 더 이상 천주의 창조물을 건드리지 마라.

 

 

― 너는 즉시 이곳을 떠나서 우리의 수호천사인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의 사슬에 묶이리.

― 윤화평…….

― 그리하여서, 티 없으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의 발뒤꿈치에 짓밟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라.

― 화평아…….

― 아멘.

 

 

고요한 바다. 그 속에서 악령은 윤화평의 목소리를 앗아갔다.

 

 

 

 

 

*

 

 

 

 

 

《..........

그 때 모태구가 골목 후미진 곳에서 나쁜 짓 하다 저한테 걸렸잖아요.

도망쳤어야 했는데 어쩌다 발목이 잡혀서.

그러니까... 모태구가 저한테서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

 

 

글자를 써내려가던 윤화평의 손이 일순간 멈추었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윤화평에게 물었다.

 

 

― 정말이에요?

 

 

내 물음에 윤화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습무 집안의 강신무로 태어난 윤화평은 어렸을 때부터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았고 겪지 말아야 할 것들을 겪었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은 전부 오른쪽 눈이 찔린 채 죽었으며, 악령에 쓰인 사람들의 살해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일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윤화평을 집어 삼킨 건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이었으리라. 윤화평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나 부마자가 살인을 하고 자살한 뒤였으니까. 그래서 악령이 윤화평의 몸에……. 나는 소매 끝 사이로 얼핏 보이는 그 날의 흉터를, 그러니까 윤화평이 칼로 제 몸에 새긴 경의 일부를 바라보았다.

 

 

― 태구 씨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데요?

 

 

윤화평은 펜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글자가 가득한 종이를 반으로 두 번 접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성당을 나서는 윤화평을 배웅했다. 성당 한 편에 주차되어 있는 모태구의 차에 몸을 실은 윤화평은 내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가끔 둘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모태구가 일과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가느라 집을 비우는 날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화평을 혼자 내버려두기가 불안했던 모태구는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수녀님. 금방 올 테니, 그 동안 화평이 좀 들여다봐주세요. 마치 물가에 어린 자식을 내놓은 부모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태구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나 역시도 윤화평이 걱정되어 종종 걸음으로 한참을 걸어 그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그렇지만 모태구의 걱정과는 다르게 윤화평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모태구가 없는, 바닷가 옆의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윤화평은 혼자 돌담에 앉아 파도가 치는 바다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곤 했다. 나는 언젠가 저 파도가 윤화평을 집어 삼킬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윤화평 씨.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어요? 내가 물으면 그는 언제나 손에 묵주를 꼭 쥔 채, 나에게 웃음을 지어왔다. 나는 그 미소에서 윤화평의 속이 말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 느낄 수 있었다. 속이 검게 썩다 못해 문드러지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둘은 일주일에 서너 번 성당을 찾아왔다. 윤화평 혼자 오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태구가 윤화평의 곁을 지켰다. 말을 하지 못하는 제 연인이 걱정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혹여 무슨 사고라도 당한다면, 윤화평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갈 테니까. 언어를 잃은 윤화평. 모태구는 그 날, 그 바다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던 음성이 제가 들을 수 있는 윤화평의 마지막 목소리였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애절한 목소리에 대답해줄 걸. 그 당시에는 윤화평이 칼을 쥐고 제 목숨을 끊는 것이 두려워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야 산더미 같은 후회가 되어 모태구를 잠식했다.

 

그런 모태구는 윤화평의 눈만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감정도 같이 느꼈다. 기쁨, 행복, 슬픔, 비참함……. 둘에게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내가 보기엔 슬픔을 공유하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멀쩡한 오른쪽 눈을 부여잡고 괴로운 듯 눈물만 흘리는 윤화평을 끌어안은 모태구의 마른 등. 울음을 참느라 잘게 떨리던 앙상한 뒷모습.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둘 만 끝없는 나락에 빠진 것 같았다.

 

 

― 제가 너무 많은 죄를 저질러서 화평이가 고통 받나 봐요.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런 게 아니에요.

― 수녀님. 이 슬픔에…….

 

 

끝이 있을까요?

 

확신 없는 물음이었다.

 

그럼요.

 

나 역시도 확신 없는 대답을 했다.

 

 

 

 

 

*

 

 

 

 

 

윤화평의 천성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말을 하지 못해도 그것은 관계에 있어 전혀 장벽이 되지 않았다. 작은 성당의 마당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온기를 가진 눈, 소리 없는 부드러운 웃음, 음성으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만으로 알 수 있는 그의 따스한 인사 같은 것들이 언어를 대신했다.

 

 

― 화평아.

 

 

윤화평보다 두 살 많은 오 신부님은 가끔 형제님, 이라는 호칭 대신 윤화평의 이름을 불렀다. 오 신부님의 부름에 윤화평은 성당을 나서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날은 모태구 없이 윤화평 혼자 성당을 찾은 날이었다.

 

 

― 이거, 선물.

― …….

― 오늘 안 나오셔서 직접 못 드리는 게 조금 아쉽긴 한데. 사장님께도 전해드려.

 

 

윤화평은 오 신부님이 건넨 묵주 두 개를 받아들었다. 묵주에는 성당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름 모를 꽃이 여기저기 달려있었다. 묵주를 건네받은 윤화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 신부님을 바라보자, 오 신부님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 달맞이꽃이야. 분홍낮달맞이.

― …….

― 꽃말이 너랑 사장님한테 잘 맞는 것 같아서.

 

 

꽃말이 뭔지도 모르면서 윤화평은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보는 사람이 다 행복해지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윤화평이 성당을 떠난 후, 나는 오 신부님께 조용히 다가가 물어보았다. 신부님. 저 꽃의 꽃말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오 신부님은 윤화평이 떠난 길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숨을 작게 들이쉬었다.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었지만. 오 신부님은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꽃말이요?

 

 

― 무언의 사랑.

― 아…….

― 꽃집 지나가다 저 꽃을 보면 늘 화평이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언제 한 번 저 꽃을 선물해주고 싶었거든요. 말을 잇는 오 신부님의 시선이 이번에는 바다가 있는 쪽을 향했다. 둘을 처음 만난 곳이었다. 차디찬 겨울 바다에서 벼랑 끝에 내몰렸던 두 사람. 과연 지금은 행복할까? 의문이 들었다.

 

 

―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 ……그렇죠.

―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둘이서 그 서로의 결핍을 채우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그러면 두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겠지. 세상 풍파 한 번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처럼 마냥 해맑을 수는 없어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당시의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세상 풍파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하게.

 

윤화평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단지, 언제 악마가 자신의 몸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새벽에 윤화평의 발걸음을 성당으로 이끌었다. 한창 모태구의 품에서 잠이 들었어야 할 그 시간에. 푸른 달빛만이 선연히 바다를 비추고 있는 그 시간에. 불안에 덜덜 떠는 몸을 하고. 윤화평은 성당까지 맨발로 한참을 뛰어와서 기도를 올렸다. 나는 말없이 흙이 잔뜩 묻어 난장판이 되어버린 그의 발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삼켰다.

 

새벽에 맨발로 성당을 찾는 윤화평의 발에 굳은살이 올라오던 즈음, 윤화평은 조용히 뒤에 서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내 몸을 붙잡지도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수녀님 너무 두려워요》

 

 

얼마나 힘을 줘서 꾹꾹 눌러 썼는지 엄두도 나지 않는 쪽지에 나는 그저 그 가여운 어린 양의 머리 위에 성호를 그리며 말할 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대상이 모호한 두려움도 인간을 이렇게 갉아먹기에. 윤화평이 짊어지고 있을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는 성당에 불길이 솟았다. 소식을 듣고 놀라 뛰어나오니, 성당의 일부가 불에 타고 있었다. 거센 불길이었다. 겨울의 건조한 날씨 탓에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로 이어진 것이었다. 시내로부터 떨어진 거리도 꽤 되었을 뿐만 아니라, 캄캄한 새벽녘이어서 소화 작업이 지체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애꿎은 손톱만 깨물고 있는 오 신부님에게 물었다.

 

 

― 안에 사람이 있나요?

― 잘 모르겠어요. 119에 처음 신고한 게 저라서. 이미 늦은 시간이라 아마 안에는 사람이 없을…….

 

 

오 신부님의 말이 끊긴 건, 숨을 몰아쉬며 뛰어온 모태구 때문이었다. 솟아오른 불길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모태구가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부디 그의 입에서 ‘윤화평’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러나 그런 내 바람을 비웃고 짓밟기라도 하듯 모태구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분명했다.

 

 

― 안에… 안에 윤화평이 있어요, 신부님…….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모태구를 문 신부님과 오 신부님이 필사적으로 막아 세웠다. 지금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이렇게 들어갔다간 둘 다 죽는다고. 물론 그런 말들이 모태구를 언제까지고 잡아 두지는 못했다.

 

 

― 안에 윤화평이 있다고!

 

 

악을 쓰는 모태구. 그가 불에 타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태구를 잡고 있던 문 신부님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오 신부님 역시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악을 쓰는 모태구가 꼭… 그들을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서의 윤화평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바다로 가라앉아야 한다고. 이 악마를 제 몸에 가두고 죽어야 한다고. 겁에 질렸으면서 제 목숨 하나 아까워하지 않던 윤화평이랑 겹쳐보였으니까. 오 신부님은 우리들에게서 뒷모습을 보인 채 결국 화염에 둘러싸인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모태구를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저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길고 긴 새벽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윤화평은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연기에 잠깐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다. 연기에 질식한 맨발 차림의 윤화평을 안아들고 나오는 모태구는 얼굴 일부와 몸의 절반 이상에 화상을 입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화상으로 인한 고통이라는데. 모태구의 가라앉은 눈동자는 제 몸을 해친 뜨거운 불길 때문이 아니라, 안에 있으면서도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 한 마디를 하지 못한 윤화평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보였다. 새빨갛게 변한 피부와 앙다문 입술. 그리고 가라앉은 눈동자에서 떠오르는 슬픔의 침전물들이 그 날의 모태구를 이루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이 지독한 사랑의 말로末路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한참 만에 병원을 찾았다.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모태구는 간이침대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병원 침대에는 윤화평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분명 좁디좁은 병상 침대인데, 왜 그렇게 넓어보였던 건지. 모태구는 나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둘의 웃는 모습이 어쩐지 점점 닮아갔다. 윤화평의 소리 없는 웃음을 따라가듯, 모태구도 웃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가슴 아픈 일인 줄도 모르고. 그의 손등에 꽂힌 주사바늘이 잘게 흔들렸다. 그의 몸 절반을 뒤덮은 화상의 흔적들. 치료가 꽤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얼굴도 성한 곳이 없었다. 제 꼴이 좀 흉하죠? 그렇게 물으면서도 모태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밤을 새더라고요. 저를 지켜야 한다고.

― 지킨다고요?

― 수녀님이 보시기에도 우습죠? 제 주제에 누굴 지킨다고.

 

 

나는 윤화평이 전혀 우습지 않았다. 자고 있는 와중에도 손에 꼭 쥐고 있는 묵주가 눈에 들어와서. 오 신부님이 무슨 마음으로 윤화평과 모태구에게 그 묵주를 선물한 건지 윤화평도 모르지 않을 터였다. 행복하세요. 말이 없어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것만으로 충분하잖아요.

 

 

― 태구 씨.

―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요즘 그런 의문이 자꾸 들어요.

 

 

나는 뚜욱뚝,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바라보았다. 꼭 모태구가 지금 속으로 흘리는 눈물 같다고 생각하면서. 윤화평은 청각도 잃은 사람마냥 우리 둘의 대화 소리에도 좀처럼 잠에서 깨지 못했다. 그게 모태구를 더 불안하게 하고 겁나게 하는 거겠지. 모든 감각이 둔해져 자신의 사랑도 알아보지 못할 윤화평이. 윤화평을 향한 모태구의 사랑은 너무 거대했다. 윤화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태구의 세상은 무너질 것이 자명했다.

 

 

― 구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 …….

― 윤화평을 만나고는, 그게 너무 간절해서…….

 

 

그럼에도 저 따위 인간은 용서 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요. 이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혀서.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해서 더더욱. 그렇게 말하며 모태구는 다시 한 번 실없이 웃었다. 그 웃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혀가 아릴 정도로 쓰라려서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수녀님. 저는요, 지옥에 떨어지기 전까지 윤화평만 보고 살고 싶어요.

 

그 말은 내 가슴 속에 칼처럼 꽂혀 지워지지 않을 언어로 남았다.

 

 

 

 

 

*

 

 

 

 

 

언제 손에서 떠나갈지 모르는 나비 같아요.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모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든 윤화평을 보며, 오 신부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이 위태로운 윤화평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걱정을 안겨주었다. 언제 제 몸을 바다로 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태구를 감싸 안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서로가 아무리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윤화평은 사랑으로는 묶어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악마가 자신의 몸에 다시금 들어온다면, 미련 없이 삶을 놓아버릴 윤화평이니까. 모태구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제 품 속을 홀연히 떠나버린 윤화평을 그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화평은 기어코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윤화평다운 고요한 죽음이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캄캄하고 차가운 곳으로 홀로 먼 길을 떠났다. 윤화평이 모태구에게 남긴 거라곤 모래사장에 가지런히 놓인 워커 한 켤레 뿐이었다. 그것도 닳고 닳아버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워커는 모태구가 윤화평에게 사준 첫 신발이었다. 분명 반질반질 윤이 났을 워커는 이젠 빛이 다 바래져있었다. 가여워서 어떡해요, 수녀님……. 윤화평 가여워서 어떡해요?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세요. 제발……. 나는 내 어깨를 부여잡고 아이처럼 우는 모태구의 등을 쓸어주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바다가 윤화평을 아주 깊은 곳으로 끌고 가버렸는지,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윤화평의 모든 것은 그렇게 가라앉았다. 마치 모태구가 자신의 흔적을 찾지 못하도록 꽁꽁 숨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의 흔적이 하나 둘 씩 떠오를 때 마다 모태구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질 걸 바다 속에서도 아는 모양이었다.

 

윤화평이 가라앉은 바닷가에는 모태구만 덩그러니 남았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은 채 몇 날 며칠을 바닷가에서 울던 모태구는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윤화평이 죽은 지 세 달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그 날은 성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앙상한 나무들이 다 여물지 못한 꽃봉오리를 피워낸 날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 일찍이 꽃을 피워내, 다른 꽃들보다 한참이나 작은 분홍낮달맞이 꽃을 손끝으로 건드려보았다. 윤화평이 죽고 난 후, 오 신부님이 화단 구석에 모종을 사서 심어 놓은 게 금방 꽃을 피워낸 것이었다. 한참을 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모태구가 가만히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모태구의 얼굴 일부분은 화상 자국이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증거였다.

 

 

“수녀님. 여행을 떠나려고 해요.”

“……여행이요?”

“화평이 곁으로 가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모태구의 손에는 꼭 윤화평이 쥐고 있던 묵주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웃음 짓는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울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고작…….

 

 

“부디…, 그 여행이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차마 그 뒷모습에 말을 덧붙일 수 없어서 그저 기도를 올렸다. 주여, 엠마오로 가던 루카와 클레오파에게 나타나시어 길을 함께 가셨으니, 길 떠나는 주의 종들에게 오늘도 벗이 되어 주소서. 두 사람의 무언의 사랑을 온갖 사고에서 지켜주소서. 두 사람의 무언의 사랑. 이게 끝일지 영원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둘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생이 다해서도. 이미 윤화평은 모태구의 세상 그 자체였으니. 두 사람을 삼켜낸 바다는 주홍빛을 띄었다. 바다 밑으로 석양이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둘의 사랑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은 윤화평과 모태구가 아닌, 바로 나였다.

 

하늘에 나비 한 쌍이 날아올랐다.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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