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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새끼. 벌어진 입 사이로 울컥 핏덩이 같은 동백꽃이 솟았다. 흥철은 고개를 돌리며 입 안에 가득 찬 꽃 덩어리를 뱉어냈다. 타액과 함께 활짝 핀 동백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흥철이 역한 기운을 잠재우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신 이어진 구역질로 눈가가 짓무르다 못해 부어 있었다. 하얗고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흥철의 턱을 잡아 쥐었다. 흥철은 다시금 식도까지 차오르는 쓰디쓴 위산을 억지로 삼켰다. 왜 고백 안 해? 놈이 뻔뻔하게 물었다. 흥철은 목구멍까지 피어올라 숨을 턱 막는 동백을 찢어 발기다 못해 바닥에 내던져 짓밟고 싶었다. 모태구. 놈의 왼쪽 가슴에 쓰인 그 석자만 봐도 이제는 화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흥철은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한 떨기의 동백을 뱉어내는 것에 그쳤다. 이 좆 같은……. 모태구는 제 발치에 떨어진 동백을 보며 아이처럼 발을 굴렀다. 방방 뛰어오르며 키득대는 그 모습에 흥철은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고 떨었다. 

들키고 싶지 않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 겨울에 한창인 동백이 이제는 앙상한 흥철의 가지를 부러뜨릴 것만 같다. 뱉어내도 뱉어내도 끝이 없다. 이제는 뭐가 진심인지 저조차도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떨어진 새빨간 동백이 마치 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하복 셔츠가 온통 붉은 꽃물이 들어 새빨갛다.

 

* * *

모태구와 최흥철은 알아주는 또라이였다. 입학 할 때부터 이름을 날렸으니 전교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전교생이 다 알 정도의 유명인이라는 것 빼고 모태구와 최흥철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태생부터 귀하게 태어난 모태구와 가난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최흥철. 모두의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모태구와 모두의 비웃음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최흥철. 항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서 있던 모태구와 가장 밑바닥 중에서도 땅굴을 파고 내려가야 격이 맞는 최흥철.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게 아니었더라면 둘은 아마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거였다. 

모태구와 최흥철이 3년이라는 시간 중 마지막 해를 같이 보내게 되던 날 전교생은 혀를 내둘렀다. 야, 저 반 담탱 얼굴 썩은 거 봐라. 혈압 올라서 실려가는 거 아니냐? 강당에 모여 다음 해의 3학년 담임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최흥철은 맨 앞줄에, 모태구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3학년 5반. 뭣도 모르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신임 교사가 둘의 반을 맡았다. 교무실의 모든 교사가 그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꼴통들을 한 반에 몰아넣고 한 명만 1년 동안 죽은 듯이 고생하자는 취지였다. 담임이 된 신임교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교사들이 한통속이었다. 3학년 5반 담임의 자리에는 반 아이들의 사진이 빼곡히 프린트 된 서류가 꽂혔다. 그 곳에 8번 모태구와 32번 최흥철이 있었다. 그 날도 얼굴이 잔뜩 부어 터진 채로 사진을 찍었던 최흥철과 형형하게 날 선 눈빛의 모태구가.

"야, 흥철아. 국어 끝나고 시간 되냐?"

"없어, 개새끼야."

"아직도 주제를 모르고 개기네? 좀 이따 보자."

호모 새끼. 그 날선 혐오는 중학교 시절부터 흥철에게 붙은 꼬리표였다. 흥철은 낄낄거리는 한 무리의 남자 애들을 뒤로 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속에서 신물이 들끓었다. 놈들의 웃음에 벌써부터 구역질이 났다. 흥철은 이제는 몸에 습관처럼 박힌 그 혐오와 경멸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흥철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좋았다. 최소한 수업 시간에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락 같은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으니까.

"야, 일어나 이 새끼야."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흥철은 억지로 일어나야만 했다. 아직 어린 태가 나는 손이 흥철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흥철은 발버둥을 쳤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흥철의 팔에 무리 중 한 남자애가 뺨을 얻어 맞았다. 이 더러운 호모 새끼가! 흥철은 그대로 교실 뒷편 구석에 내던져져 마구잡이로 걷어 차였다. 흥철은 살기 위해 팔로 머리를 가리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폭력에 몸은 젖은 신문지처럼 걸레짝이 된 지 오래였다. 비단 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더는 버틸 정신머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흥철은 생각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박정우. 흥철은 기억한다. 이제는 악몽이 되어버린 제 첫사랑의 이름을.

"흥철아. 이리 와. 선생님이랑 같이 밥 먹자."

그 좆 같은 친절함. 박정우는 흥철의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이었다. 과목은 국어. 박정우는 친절했고 직업 정신이 투철했다. 박정우는 습관같은 다정함을 무기 삼아 최흥철을 휘두르고 주물렀다. 급식비가 없는 흥철과 같이 밥을 먹기 위해 박정우는 도시락까지 싸왔다. 처음 며칠은 싫다고 꽁무니를 빼던 흥철도 박정우의 독약같은 친절함에 부지불식간에 마음을 열었다. 젠장. 울렁거림이 그 후 며칠동안 계속 됐다. 자다 일어나보니 침대가 토사물로 흥건했던 적도 있었다. 흥철은 그게 뭔지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고 모른 척을 하고 싶었다. 침대에 침과 함께 말라붙은 앙상한 안개꽃 줄기가 제 입에서 터져나온 꽃망울이 아니기를 바랐다.

"흥철이가 일어나서 한 번 읽어볼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흥철은 그 날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박정우가 부르는 제 이름을 들으며 안개꽃 한 다발을 토했다. 우웩, 우웨엑. 흥철의 책상이 온통 타액과 흩어져 나온 안개꽃으로 가득이었다.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박정우는 사색이 되었고, 최흥철은 온몸이 벌벌 떨렸다. 생리적인 눈물로 눈앞이 흐렸다. 빈 속에 꽃을 피워 토해내니 눈앞이 아찔하게 어지러웠다. 곧 이어 최흥철이 앉아 있던 의자가 넘어가고, 최흥철의 몸이 곧장 교실의 나무바닥으로 추락했다. 박정우 덕분에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볼 수 있을까 싶었던 최흥철의 인생이 곧장 심해로 가라앉았다. 그 후 최흥철이 보건실에서 눈을 떴을 때 최흥철에게 남은 것은 박정우의 전근 소식과 같은 거 달린 남자 선생을 사랑해 수업 시간에 꽃을 토한 '호모 새끼'라는 낙인 뿐이었다.

흥철은 그 후 온갖 일을 당했다. 갓 태어난 악마 같은 새끼들의 좆을 억지로 물었다. 하기 싫다는 반항에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발길질 뿐이었다. 어떤 놈들은 더럽다며 흥철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흥철은 그렇게 한 해를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공포에 굴복하는 법을 배웠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맞기 위해서는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반항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고 나면 흥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난한 집,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와 사고로 눈을 잃은 어머니. 그 누구도 흥철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흥철아, 요즘 학교에서는 별 일 없지? 라면 물에 죽처럼 한참 불려 눌은 밥을 어머니의 입가에 가져다 대면서 흥철은 대답했다. 어. 손아귀가 온통 찢어져 수저를 쥐기가 힘들어도 흥철은 이를 악물었다.

"야. 그만해 봐."

배를 얻어 맞은 탓에 숨이 턱 막혔다. 흥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때까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컥컥댔다. 그러는 동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놈들의 발길질이 멎었다. 흥철의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던 남자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아니, 이 새끼가 개지랄을 떨잖……, 그 중심에 있었던 남자 아이는 곧바로 뺨을 얻어맞았다. 비켜봐. 눈치 없는 새끼야. 그 한 마디에 교실 뒤에 모여 있던 남자 아이들은 뿔뿔이 제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최흥철은 찢어져 피가 흐르는 눈꺼풀을 간신히 떠올렸다. 아이의 명찰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초점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머리를 맞아 앞이 어지러웠다. 흥철은 이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그 다음 날부터 흥철은 얻어 맞지도, 화장실에 끌려가 억지로 다른 새끼들의 좆을 쥐어 흔들거나 빨아야 하지도 않았다. 흥철은 제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은 그 뒤통수를 노려봤다. 모태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따돌림이 모태구의 말 한 마디로 종결되었다.

"건들지 마. 내가 갖고 놀 거니까."

 

* * * 

갖고 놀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과는 다르게 모태구는 최흥철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가끔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최흥철의 앞까지 다가 와 최흥철을 빤히 보고 가는 게 모태구 식의 괴롭힘이었다. 최흥철은 모태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모든 폭력과 수치스러운 하루들로부터 해방이 된 건 고마웠지만 흥철은 모태구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최흥철에게는 모태구를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최흥철은 어느 날부턴가 모태구가 박정우와 꽤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옆모습이라던지, 뒤통수,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수업 시간에 턱을 괴고 앉아 픽픽 터뜨리는 그 실소까지도. 모태구와 박정우가 닮았다는 것과 제가 그 끔찍한 지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게 전부 모태구 덕분이었다는 사실이 이어지자 모태구를 훔쳐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체육 시간, 스탠드에 앉아 있는 모태구.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낙서를 하는 모태구. 턱을 괴고 조는 모태구. 급식을 먹지 않고 교실에 남아 책을 읽는 모태구. 모태구, 모태구, 모태구……. 어느 샌가 하루가 모태구로 점철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히끅."

흥철은 딸꾹질과 함께 동백 한 송이를 토해냈다. 최흥철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흥철아."

마치 예견된 미래처럼 어느 날 반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빈 교실에서 흥철은 동백을 줄줄이 토해내고야 말았다. 우욱, 우욱-……. 입을 틀어막은 흥철의 손을 비집고 붉은 꽃잎들이 찢어져 떨어졌다. 흥철의 손의 상처들은 이제야 겨우 아물어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었는데. 흥철은 떨리는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꽃잎들이 숨을 막으려 들었다. 정작 이 일의 원인인 놈은 교실의 뒷문에 기대어 서 그런 흥철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흥철은 슬픈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울렁거림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흥철이 타액으로 범벅이 된 손을 떼자 마지막으로 몇 떨기의 동백이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큭. 그 모습을 보던 모태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흥철의 발치에 동백꽃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흥철아. 너도 참……."

한 쪽 어깨에 가방을 걸친 모태구가 비죽이 웃었다. 힘들게 산다. 모태구가 킥킥댔다. 흥철은 빨간 꽃물로 범벅이 된 손을 부랴부랴 교복 바짓춤에 닦았다. 하지만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박정우가 모태구의 이복 형이라는 것은.

 

* * *

"흥철아. 더해 봐."

"개새, 윽……, 개새, 끼야……. 우욱-……."

태구는 흥철의 머리채를 제 쪽으로 쥐어당겼다. 흥철의 다리가 무너질 듯이 흔들거렸다. 태구가 다정한 손길로 흥철의 볼가를 쓰다듬을 때마다 흥철은 기침처럼 꽃을 토해냈다. 

"왜 그래, 흥철아."

눈꺼풀이 따끔거렸다. 흥철은 입 안에 차오르는 꽃잎들을 한 번에 모아 퉤 뱉었다. 

"너 좋아하잖아."

내가 박정우 같이 구는 거. 보잘 것 없는 너에게 다정한 거. 모태구가 흥철의 귓가에 속삭이며 웃었다. 태구의 손가락이 흥철의 입 안을 가르고 들어왔다. 흥철의 혀를 잡아 누르고 입천장을 긁었다.

"더해 봐. 더 토해 보라니까."

"싸이코, 같은 새끼……."

흥철은 낡은 체육창고의 우둘투둘한 벽면을 뜯어내고 싶었다. 습하고 어둡고 더러운 곳. 볕 하나 들지 않는 이 곳이 마치 우스워진 제 꼴을 보는 듯 했다.

 

젠장.

진짜 좋아했는데,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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