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의 선언
소라
검정의 선언
걔가 신경 쓰였다.
정말로 단순히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피부에 새까만 머리카락, 키가 꽤 큰 건지 손목 발목이 드러나는 교복을 입은 조용한 걔가 신경 쓰였을 뿐이다. 나는 걔를 속으로 검정이라고 불렀다. 걔는 교복도 검정, 머리카락도 검정,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는 눈동자도 검정, 신는 신발까지 온통 검정이었으니까. 어째 유난히 조용한 걔 천성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중학교에서 갓 올라온 검정은 또래보다 키도 작았었고, 자기 몸보다 품이 큰 교복을 입은 터라 앉아있으면 거의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게 아마 남고 아이들의 어떤 스위치를 건드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와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점이 내 오지랖 스위치를 건드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부러 친구들을 만들어 준다며 등을 떠밀곤 했다.
나는 걔와 완전 달랐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밴드부 보컬을 꿰차고, 학교 아침방송 아나운서를 전문으로 맡으며 얘는 학교 대표가 될 거라며 떵떵 소리치는 주위 친구들이 생겼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겉으로만은.
그런 나를 처음으로 싫어한다고 선언한 게 검정이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첫 번째 개인주의자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검정과 내가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검정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고, 유치원 때의 사진을 보면 생일파티 때 볼에 뽀뽀하는 사진도 있고, 초등학교 때의 사진을 보면 같이 교통안전 교육을 들으며 붕붕이를 탄 사진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눈에 띄게 저를 싫어할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도 검정은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점점 무리가 형성되는 2학년에 들어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혐오에 가까웠다. 단순히 나는 걔가 싫어, 같은 감정이 아닌 멸시하고 피해다니는. 어색하고 싫어서가 아니라 똥을 더러워서 피하지 같은. 그건 아마 중학교 때부터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중인 계양진은 하도 시골이라 초등학교, 중학교가 붙어있었다. 그래서 서른 명 즈음 되는 다 아는 아이들끼리 만나고 알았다. 고등학교는 읍내에 위치한 계양진 남고, 계양진 여고로 나눠가곤 했다. 그래서 검정이 나를 싫어하는 게 더 크게 느껴지곤 했다. 또, 나는 사랑받고 자라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으니까.
고등학교 때부턴 나도 걔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안다, 나도 그게 못된 짓이라는 걸. 나는 부러 검정의 눈에 밟히게 구는 게 오히려 더 그 아이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킴이 분명했으니, 2학년이 되고 나서는 그의 반에 찾아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는 문과 1반이고, 걔는 이과 7반이었으니 윗반까지 가야하는 수고까지 하는 셈이었다. 이까지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 그냥. 응, 그냥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왕 싫어하는 김에 얼굴도 보고 기분 확 잡쳐버리라는 작은 심술 같은 거였다.
“지인짜 미안한데, 최윤 자리 어디야?”
“저기. 김용민 옆자리. 지금 도서관에 있을 걸? 걔, 도서부잖아.”
“아, 오케이... 고마워.”
“근데 잠깐만.”
걔는 왜? 걔 사람 싫어하는데, 아무리 너라도 안 돼. 절대 안 될 걸?
2층에서 4층까지 헥헥대며 올라갔다. 경치가 참 좋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반짝거렸다. 이정도로 공을 들이는데 나한테 신경을 안 쓰고 배기겠는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걔 자리가 복도쪽 분단 네번째 끝자리인 건.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름도 모르고, 어렴풋이 얼굴 윤곽만 생각나는 얘한테 검정의 자리를 물어본 건....... 그저 괜히 나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했던 작은 심술이었다. 어떻게 하면 숨통을 조일 수 있을까, 했던 작은 심술. 교실에서 “윤화평이 걔를 찾던데?”라는 말들을 분명히 할 거다. 나는 그정도로 친구들 사이의 호의를 받을 수 있는 놈이니까.
점심시간의 복도는 한산했다. 아니, 정확히는 점심시간의 도서관 앞 복도가 조용한 거였다. 좀이 쑤시는 놈들만 모이는 학교인 건지 대체 책 읽으러는 아무도 안 오는 듯했다. 도서부는 반이 진짜 책이 좋아서 온 놈들, 나머지 반은 그냥 봉사시간 때우려 들어온 멍청이들이었다. 나는 온 얼굴에 가식을 올려놓으며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아무도 없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같은 학년 친구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고, 하도 도서부를 들락거려 언젠가 도서부 차장이란 직급을 단 검정은 책을 정리하는 트레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안녕, 바빠?”
검정은 대답 없이 책에 고개를 박았다.
“이 책, 재미있나 보네.”
나는 검정이 들고있던 책을 빼앗아 들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학교 때 읽은 적이 있었다. 표지에 바퀴벌레가 그려져있어 만지기도 싫었던 그런 짧은 소설책. 꽤 손때가 탄 듯이 책장이 너덜너덜했다.
「... ‘한숨 더 자서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잊어버리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으나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유독 때가 탄 장을 넘겨보자 새까만 눈동자가 내 손 끝을 따라붙었다. 검정은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려진 책을 빼앗았다. 윤아, 최 윤. 너, 나 싫어하지. 검정은 그 말과 동시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검정은 고등학교 입학 때와 많이 달라졌다. 내 키 조금 아래를 웃돌던 키가 순식간에 자라 벌써 180cm 즈음 되는 것 같고, 젖살이 빠진 건지 평범하던 몸이 야위었다. 못 볼 정도는 아니고, 그냥... 많이, 말랐다는 거다. 작기만한 검정이, 못 본 사이에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책을 탁, 소리나게 덮고 내 어깨를 잡았다.
“내가, 왜 너를 싫어하는지, 알아?”
검정은 말을 뚝뚝 끊으며 뱉음에 맞춰 나를 궁지로 밀었다. 책장과 책장 사이, 옆으로 서야만 겨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폭의 그 안쪽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책장 그림자가 빛을 덮어 시야가 조금, 어두워진다.
선배, 저 먼저 수업 들으러 갈게요!
불 다 끄셔야 해요! 카운터에 홀로 시간을 축내던 사람이 후배였구나. 그 후배가 가면서 내가 위험해졌을 때 나를 구해줄 사람이 줄어들었다. 책장 쪽 불이 꺼지고, 저 멀리 켜진 노란 벽등이 더욱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내 등이 책장에 닿는 순간 수업종이 울렸고, 머릿속에선 저 벽등이 사이렌이라도 되는 마냥 비상등이 켜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창체시간을 가장한 자습의 시작이었다.
“왜......, 싫어하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친구가 많은 것도, 말이 많은 것도, 쓸데없이 해맑은 것도, ... 다, 마음에 안 드니까.
검정은 계속해서 말을 이으려다 흔들리는 내 눈을 보고 입을 한 번 꾹 다물더니 결국 “마음에 안 든다”는 말로 일축했다. 그도 꼴에 직접적으로 상처주는 건 익숙치 않아보였다.
익숙할 것 같았던 직접적인 발언은 생각보다 눈물날 것 같았다.
검정의 새까만 눈동자는 나를 잡아먹을 듯 커다란 어둠과도 같았다. 야위기만 한 것처럼 보였던 몸은 굶주린 야생의 재규어와 겹쳐보였고, 나는 검정이 바라보는 눈빛이 무서워져 몸을 구석으로 밀었다. 평범한 고동빛이라고 생각했던 눈은 새까만 먹물빛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다. 오히려 잡아먹겠다는 것보다는, 상처받은 게 더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먼저 혐오하고 싫어하던 건 넌데, 왜 네가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어?
“나는 네가 되고 싶어.”
너는 사랑 받잖아. 모두가 미워하지 않고, 모두가 네게 친절하고, 모두가 너를 사랑하잖아. 근데 나는 네가 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네가 싫어. 미친듯이 싫어. 나는 네가 되고 싶은데, 나는 네가 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오지랖 부리지 마, 개새끼야.
검정은 빠른 템포의 말투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부릅뜬 눈동자가 눈물이 곧 떨어질 듯이 번들거렸다.
“넌 내가 왜 싫은데.”
검정의 나른한,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르듯 들쑤셨다. 그러게, 나는 네가 왜 싫을까. 단순히 친구가 없고 홀로인 그 모습이 싫었던 걸까, 아니면... 아니면, 진짜 네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걸까.
사실 속으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저 옛날부터 검정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검정이 나를 싫어했거나. 아니면...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머릿속에서 실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는.......
나는,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