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부쳐, 당신께
고갱
고갱 / 계절에 부쳐, 당신께
가을
창밖의 은행나무는 이제 완연히 노란 단풍이 들었습니다. 단풍의 끝물에서, 나무는 부지런히 계단에도 화단에도 온통 노란 잎을 선물처럼 뿌려놓았습니다. 거실에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제법 장관입니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만으로도 풍경은 이렇게나 달라집니다.
이쯤 되면 당신은 분명 ‘뭐 하는 거야?’라고 묻거나 어리둥절한 얼굴로 저를 아니, 이 편지를 보시겠지요. 그도 아니면 앞의 순서는 다 건너뛰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곧 터질 풍선처럼 부풀어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생각하면 자꾸 손이 멈춥니다. 이것도 몇 번째 늘어놓는 서두인지 모르겠습니다. 펜은 자꾸 손에서 벗어나고 종이는 삐뚤어지며 손이 굳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참고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적으니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기도. 아니다, 아직은 이상합니다. 내가 윤화평 씨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실은 강 형사님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만나서 술을 마시거든요. 어느 날 말씀하시더라고요. 넋두리라도 해보는 게 어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강 형사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을 때, 너무 힘들어서 엄마 수첩에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곤 하셨답니다. 그러면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고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소주를 마시던 내가 ‘저는 괜찮은데요.’라고 했나, 아니면 ‘제가 왜요?’라고 했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말했더니 강 형사님께서 내 얼굴을 한참 빤히 보시더라고요. 넌 아직도 그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잖아, 최윤. 그 말씀을 끝으로 또 한참 말이 없으셨어요. 우리가 만나면 자주 그랬습니다. 잡다한 신변 이야기를 나누다 꼭 말이 빈 술병처럼 똑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와요. 말없이 잔만 비우고 주변의 소음이 오히려 벽을 쳐서 적막해지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비어 있는 의자 하나를 함께 쳐다보는 그 순간. 나는 잠자코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 억지로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강 형사님과 나는 좋은 술친구라고 생각합니다. 헤어질 때 또 그러시더라고요. 우리가 살아야 기다리든 찾든 뭐라도 할 거 아냐. 취기라고는 없는, 그렇지만 평소보다 힘없는 목소리를 남기고 강 형사님이 가셨을 때 나는 우두커니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그날도 해경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육광 도사님을 찾은 이후로 죽 우리는 아무런 연락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술을 마셨던 것 같아요. 핑계가 필요했으니까요. 윤화평 씨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 둘 모두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큰하게 오른 취기 덕분에 하나도 서늘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마시는 바람에 사실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지도 잘 체감하지 못했어요. 걸어오는 길이 어찌나 길던지 나는 자주 멈춰서 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겨우 대문을 찾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꺾어지는 계단 턱에서 저는 더 올라가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없었습니다. 분명 여기엔 있을 거로 생각하며 꾸역꾸역 돌아온 집 앞에도 당신은 없었습니다. 좋아하던 식당에도, 버려진 듯 놓인 당신의 택시 안에도, 삶의 흔적이 희박한 당신의 집 안에도, 할아버지의 곁에도, 그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습니다. 정말 윤화평 씨는 그 넓은 바다에 남았을까. 그 생각에 나는 꼼짝도 못 하고 비틀비틀 당신이 앉아있던 자리를 비켜 계단에 걸터앉았습니다.
그곳에 앉아 밤새 나는 바다를 생각했습니다. 검고, 깊고, 차갑던 바다에 혼자 뛰어들던 당신의 등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따라 헤치고 들어간 검은 물살이 얼마나 거셌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검은 바닷속, 내 마지막 기억은 한없는 어둠 속에 침잠하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 순간에 내가 믿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걸고 나는 당신의 손을 부여잡았습니다.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난 그 말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놓쳤어요. 잡았어야 했는데. 꽉 붙들었어야 했는데.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는 기분으로, 나는 그렇게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새벽이슬이 어깨에 내려앉을 때야 강 형사님 말씀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기다리든 찾든 뭐라도 할 거 아냐.
그래요, 우선은 살아야겠지요. 매일 그 밤바다로 끌려가서는 안 되겠지요. 당신이 언제 어떻게 돌아오든 내가 당신을 찾아내든, 그때까지 아무튼 나는 살아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강 형사님처럼 말을 걸려고 했는데 허공으로 소리 내어 말을 걸자니 속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고민 끝에 방법을 바꿨습니다. 단정하지만 멋없는 하얀 편지지 묶음을 샀습니다. 많이 남겠지 했는데 벌써 몇 장이나 뜯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어색하지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처음이라 나도 몹시 어색하지만, 나는 일단 여기에 발을 딛고, 살아보겠습니다. 깊은숨을 내쉬듯 천천히 해볼 테니 조금만 들어주세요, 윤화평 씨.
짧은 가을이 끝나갑니다. 단풍의 서늘함이 좋다던 당신이라면 분명, 아쉽다 하셨겠지요.
겨울
어제는 눈이 왔습니다. 밤중에 눈 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면 당신은 믿어주실 건가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더니 뺨을 에는 찬바람이 방 안으로 휘몰아쳤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을 보았습니다. 까만 밤하늘 아래에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나는 외투를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새벽 2시쯤이었으니 주택가에 오가는 사람도 없이 저만 하얀 세상에 서 있었습니다. 슬리퍼 아래에 눈이 밟혀 뽀드득 소리가 났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저만의 설원이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에도 겸손하게 반짝이는 눈을 보니,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펜을 잡았습니다. 핑계도 참 좋지요.
눈은 싫어. 그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길이 어는 것도 싫고, 다 녹지 않아 길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싫어서 눈은 싫다고, 그렇게 말했었지요. 그때 우리가 왜 뜬금없이 눈에 관해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더워서 그랬을까요. 길이 얼어 싫다는 말에 내가 ‘직업정신이 투철하시네요.’라고 말한 것은 기억나는데. 우리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잖아요. 박일도에 관해 물어본다고 땡볕 아래에 한참 돌아다니다, 당신이 동네 슈퍼 앞에 멈춰서더니 말도 안 하고 불쑥 안으로 들어갔잖아요. 그리고는 탱크보이 두 개를 사서 덜렁 들고나와 내게 하나를 내밀었고요. 그런 것들은 기억나요. 슈퍼 앞에 아주 큰 나무가 있고 그 아래 벤치가 있어서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죠. 이럴 때가 아닙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맞나? 당신은 ‘지금은 이럴 때야.’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그때 세상이 너무 뜨겁고 밝아서 우린 눈을 가늘게 떠야 했습니다. 당신이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고 말했었죠? 비는 괜찮다고. 나는 반대였어요. 비는 싫었거든요. 비가 오면 세상의 톤이 한 단계 내려가면서 어두워지니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린 왜 갑자기 눈 이야기를 했을까요.
경찰은 우리를 믿어주지 않고 사람들이 죽고 박일도는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나무 그늘에 앉아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요. 아까도 썼지만, 아마 너무 더워서, 그래서 그랬을 거예요. 한여름에 갇힌 우리에겐 겨울이 필요했을 수도 있죠. 그러니까 왜 눈에 대해서 말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눈이 싫다고 당신이 말하던 순간은 정확하게 기억해요. 아이스크림을 물고 우물거리는 투로 말해서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아이스크림을 빼고 다시 말했잖아요. 그 정확한 말투로, 눈은 싫다고. 그리고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렇잖아요, 우린 같은 목표 때문에 만났지만 서로 잘 몰랐으니까요.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각자 어떻게 흘러와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나는 그저 당신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뜨거워진 머리로는 고작 그것이 한계였으니까요. 별안간 당신이 덧붙였지요. 바다에 내리는 눈을 본 적 있어, 마태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고 당신은 나를 보고 말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 눈이 내리는 바다를 들여다봤지요? 너무 추워서 물거품마저 얼어붙은 백사장에서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맞은 날에 관해서 이야기했잖아요. 백사장에는 눈이 듬성듬성 쌓이는데 차가운 바다로는 도무지 쌓이지 않고 녹기만 하는 풍경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줬어요.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없던 일처럼 바다 위에 녹아내리는 풍경만큼은 좋았다고 말했죠.
나는 그때 당신의 눈을 보고 있었어요. 빛이 들어 투명해진 갈색 눈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남의 말에 빈정거릴 때 짓는 웃음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밝아진 눈이었어요. 그때의 나는 잘 몰랐어요. 당신을 즐겁게 하는 기억들은 몇 개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하고 소중하다는 걸 몰랐어요.
하지만 이젠 압니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인생의 페이지 몇 개를 내게도 나눠주었잖아요. 그래서 간밤의 하얀 세상을 보자, 당장 당신의 눈이 생각났습니다. 눈이 내리는 바닷가를 떠올리며 즐거워하던 그 갈색 눈동자가. 기억 속 바닷가를 마냥 걸어가던 것 같은 모습을요.
그래서 이곳에 왔습니다. 첫차를 타고 내린 새벽의 바닷가는 몹시 추웠습니다. 나는 백사장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지켜봤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눈 내리는 바다, 그러나 바다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아졌다고 쓸쓸히 마무리 지었던 그 바다. 이제는 당신이 세상을 떠안고 걸어 들어간 바다에. 얼어붙은 거품 사이를 밟으며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성거렸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눈 내리는 바다에, 혹시라도 당신이 돌아와 있을까 봐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요. 귀가 아파 더 서 있기 힘들 때까지 나는 그곳을 지켰습니다. 당신이 바다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서 있으면 어딘가에 있을 당신의 기억 속 그 풍경에 내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서 미련 맞게 서 있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요. 답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이제 곧 해가 바뀌고 나도, 당신도 한 살 더 먹겠죠. 그때 되면 정말 말이나 놓을까 봐요. 억울하면 너도 놓으라고 한 지가 언젠데 나는 아직도 이러고 있습니다. 부디 직접 내게 와서 ‘거봐.’라고 해주세요. 나는 기꺼이 항복하겠습니다.
봄
최윤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히 지냈다고 적고 싶지만, 사실 꽃샘추위에 찾아온 감기 때문에 고생을 좀 오래 했습니다. 바늘을 삼킨 느낌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한창 심할 때에는 미사도 집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독한 감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감기를 옮겨서도 안 되고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으니 신자들과 만날 일도 없이 혼자 집에 있어야 했습니다. 강 형사님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부르셔서 나갔다가 그대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몰골로 여긴 왜 나왔냐고 등도 맞았고요. 그대로 마트에 가서 인스턴트 죽이며 목에 좋다는 꿀이며 이것저것 사서 손에 들려주셨습니다. 아무튼 너희들은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요. 눈치채셨나요? ‘너희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강 형사님께서는. 그러니까 나와 윤 화평 씨 이야기겠지요. 그 말이 나에게는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는 강 형사님도 아직 당신의 자리를 비워두지 못하셨을 거예요. 나와 마찬가지로. 이따금 강 형사님과 내가 당신의 몫을 나눠 들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당신의 삶을 반으로 나눠 가지고 당신의 몫까지 더불어 사는 것 같아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계속 우리가 당신의 몫까지 살아야 하겠지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강 형사님께서 계시니까 나는 그분과 함께 윤화평 씨가 소고기 사달라고 조르던 이야기를 하면서 술도 한잔할 수 있고 웃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당신은 어떤가요. 윤화평 씨. 당신은, 지나치게 혼자인 건 아닌지요. 혹시라도 찬 바닷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건 아닌지요. 그도 아니면 소식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혼자 찬 숨을 쉬고 있는 건 아닌지요.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합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벚꽃이 한창입니다. 주변에 제법 유명해 졌는지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연인끼리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네요. 낮에는 사람이 꽤 많지만, 밤에는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성당 앞인지라 밤 벚꽃을 보겠다고 성당의 적막을 깨우러 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밤에는 성당 식구들이 조용히 그 벚꽃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이제 겨우 감기가 나아 그간 처리하지 못한 잡다한 일들을 보느라, 밤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잠시 그 길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가로등 빛을 받아 밤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벚꽃은 아름다웠습니다. 낮에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벚꽃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제까지 살면서 꽃을 보며 차분히 감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낭만이 없다고 타박했던 것처럼. 그러는 ‘그러는 윤화평 씨는 얼마나 낭만적인데요.’라고 물었더니 뻔뻔한 얼굴로 ‘나야 낭만 빼면 시체지.’ 했었지요. 사실 당신과 내가 낭만적인 삶을 살기엔 너무 힘든 일들이 많았으니, 여유롭게 삶을 돌아볼 시간 따윈 전혀 없었을 텐데도 당신은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던지. 내가 어이가 없어서 ‘뭔데요, 낭만이.’라고 물었더니 당신은 오래 생각도 않고 내 뺨에 당신의 입술을 부비고 멀어지면서 ‘달이 환하잖아.’라고 했잖아요. 대체 그게 뭔가요. 입술은 또 어찌나 뜨겁던지. 뜨거운 뺨을 문지르며 올려다본 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크고 환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떻게 낭만이냐고요. 나는 따져 묻지도 못하고 멀거니 서서 뺨만 문질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밤하늘에 뻗어 나간 벚꽃 가지를 보며 나는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벚꽃 나무를 올려다보며 ‘많이도 폈다.’하고 감탄할 뒷모습을 떠올리니 꽃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것이 낭만이겠죠. 누군가를 생각하여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일. 아닌가요? 그 생각으로 벚꽃을 올려다보는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손톱같이 작은 꽃잎이 바람결에 실려 나부꼈지요. 나는 그 꽃잎들 사이에서 당신을 봤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아마 밤 벚꽃이 내게 보낸 비밀스레 보여준 환상이었겠지요. 나는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슬픈 건지 설레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옷을 갈아입는데 꽃잎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것을 주워 성경책에도 끼워놓고 이 편지지에도 붙였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꽃잎을 타고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도 벚꽃은 피어날 테고, 바람은 불겠지요. 이 편지지 위 꽃잎에 가만히 입술을 대보았습니다. 어디에 있든, 당신이 꽃잎을 타고 나의 숨을 느꼈으면 합니다. 당신이 지나치게, 지독하게 혼자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낭만을 계속해서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나를 떠올려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계속 달이 환하다고 얘기해주세요. 부디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감기는 정말 독합니다.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이 봄을 당신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나는 아직 조금 추워요. 당신의 봄은 완연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어느새 녹음이 짙어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계절을 떠올립니다. 이마에 맺힌 땀은 왜 항상 뒤늦게 알아차리는 걸까요. 나는 여름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피정은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를 올리신 것처럼, 일상의 모든 짐을 내려두고 사색에 들어가 묵상과 기도를 반복하는 일입니다. 침묵 속에서 나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침묵 기도는 언제나 나를 차분하게 만들고 고뇌에서 건져주었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눈을 감을 때면, 내 마음 한구석에 파도가 칩니다. 당신을 삼킨 검은 바다가 나에게 손짓하듯 너울거립니다. 그 안에 당신이 있을까요. 그래서 올해 피정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제 안의 어두움과 대면하는 일은 부마자를 구마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조차 모르겠으니, 어쩌면 구마예식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정이 끝난 뒤 나는 이틀 정도 되는 짧은 휴가를 받았습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갑작스러운 휴가였습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계양진에 내려왔습니다. 강 형사님과 함께 몇 번 들렸더니 이젠 아주 익숙합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하십니다. 괄괄한 이웃집 할아버지도 여전하시고요. 살짝 틀어진 가족사진 액자도, 삐거덕거리던 마루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나는 늘 이 집에 도착하면 집을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봅니다. 당신이 낡은 부엌문을 밀고 나오며 ‘이제 왔어?’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을 것을 기대하며 문을 쳐다보아도,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을 얼굴을 생각하며 안방 문을 열어도 거기엔 볼이 눌려 잠든 얼굴 대신 당신의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그래요, 거기 사진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들 사진 옆에 따로 놓인 당신의 사진이요.
할아버지가 평상에 나가 계실 때 나는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웃지도 않고 자세히 보면 초점도 맞지 않는 사진을 크게 뽑아 액자에 넣어 놨습니다.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남은 당신의 사진을 제외하면, 이것이 우리가 찾아낸 당신의 유일한 사진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윤화평씨 사진이요.
시체가 없으면 사진이라도 놓고 장례 치러야 하지 않겠냐고, 강 형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나는 화를 냈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언성을 높일 때에 평소라면 같이 눈을 크게 뜨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을 강 형사님은 차분히 가라앉아 계셨습니다. 주로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강 형사님이지만 우리 셋 중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바위처럼 단단하게 무게중심을 잡으시잖아요. 그때도 그랬습니다. 이미 제 반응쯤이야 예상을 하고 오신 것처럼 차분하셨습니다. 윤화평이 바다에 뛰어들고 계절이 세 번 바뀌었으니 이제 그만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도 하셨습니다. ‘최윤, 넌 신부님이잖아.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서 알잖아. 어떤 일들은 억울하고 분해도 그냥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거라는 걸 알잖아.’ 강 형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조금 우셨습니다. 나는 마냥 앉아 강 형사님만 쳐다보았습니다.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 해경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고 하루에 한 번 걸어보던 전화가 일주일에 한 번, 다시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강 형사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도 알고 있었고, 또 그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직은 당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지 않고는 보낼 수 없어서, 안 된다고만 했습니다. 이대로 장례를 치르고 허망하게 당신을 보내면 돌아올 길이 영영 지워질까 봐 무서웠습니다. 아직 일 년이 안 됐으니까, 일 년이 지나도 못 찾으면 그때 그렇게 해요.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 년만, 딱 일 년까지만 기다려요, 우리. 강 형사님은 나를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거라도 하자, 그럼. 그러시면서요.
대신 사진을 뽑아 할아버지 집에 세워두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최근 모습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사진은 내 핸드폰 속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것도 작동이 되냐고 놀렸던 내 폴더폰 안에서요. 부마자의 상태를 교구에 보고하려고 대충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부마자의 뒤에 당신이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심각합니다. 나는 그 사진을 강 형사님께 보냈고 강 형사님이 아는 사람을 통해 당신 모습을 잘라내서 출력해 주셨습니다. 검은 액자에 넣어 계양진 집에 가져다 놨을 때 할아버지는 흐릿한 정신으로도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셨습니다. 당신이 윤화평이고, 자신의 사랑하는 손자이며, 멀리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아시는 것처럼 오래 보셨습니다.
나도 그처럼 사진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아무래도 아쉽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어둘 걸 그랬어요. 당신은 늘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곧잘 웃어 보이던 사람인데, 그 모습을 남기지 못해 몹시 아쉽습니다. 어쩜 그렇게 하나도 남긴 것이 없는지, 당신의 웃는 얼굴이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슬픕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었지요. 햇볕이 따가워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당신이 나를 돌아봤습니다. 눈을 감아야지만 겨우 그 모습이 보입니다. 눈을 뜨면 온 세상 녹음은 그대로인데 당신만 없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은 당신도 푸르른 녹음과 함께 돌아오리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계절에. 괜찮습니다, 조금 늦어져도 나는 더 기다릴 수 있어요.
다시, 가을
윤화평 씨 꿈을 꿨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계단에 앉아 노란 은행잎을 주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야 나타난 당신이 기가 막혀서 한참을 보고 서 있었습니다. 턱을 괴고 주저앉아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며 은행잎을 빙빙 돌리던 당신은 마침내 계단 끝에 서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고단한 얼굴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데, 그걸 못 들었어요. 꿈에서 깨버렸거든요. 눈을 뜨고도 한참 믿기지 않아 나는 멍하게 천장을 쳐다보았습니다. 이제야 꿈에 나오다니, 정말 못됐다고 생각하면서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다시 눈을 감아 봐도 당신은 나타나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었어요. 강 형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제발 좀 잘 살라고 했을 거야, 윤 화평이라면.’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마른 것 같다느니 눈이 퀭하다느니 트집을 잡으십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청소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청년부 신자들과 따로 교리강의도 하고 예비신자 교육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교구에 제출해야 하는 잡다한 행정 절차도 이것저것 돕고 봉사도 다닙니다. 운전면허도 따려고요. 가능한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밥도 잘 먹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될 수 있는대로 식사는 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웃기도 잘 웃어요. 강 형사님의 엉망진창 부장님 개그에도 제법 잘 웃을 수 있게 됐거든요. 나는 그럭저럭 잘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내가 내 삶을 잘 꾸려나갈수록 나는 당신의 빈자리에 마음이 쓰입니다. 공허는 자라고 자라 당신만큼 커졌습니다. 내 가슴에 품은 공허는 자꾸 나의 삶을 밀어내려 합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무력하게 만들지요. 그걸 이겨내고 숨을 쉬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강 형사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은 비밀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이 지독한 상실감을 이겨낼 나만의 부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보면 통쾌해하시겠네요. 신부가 부적이라니요.
집에 당신의 물건을 정리한 상자가 있습니다. 당신이 사라진 직후, 강 형사님이 가져다주셨어요. 계양진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지만 혹시 몰라서 내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동안 한 번도 상자를 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흔적을 그대로 보관하고 싶어서, 아무리 꺼내 보고 싶어도 상자만 매만졌어요. 그러나 당신이 사라진 이 가을, 바람이 서늘해지는데 여전히 오지 않는 당신이 너무 그리워서 나는 처음으로 상자를 열었습니다. 처음 당신의 집에 갔을 때 삶의 흔적이라고는 너무 희박한 모습에 놀랐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상자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박일도를 쫓아 그리 길지 않은 삶 전부를 걸었던 치열함이 거기 있었습니다. 다른 상자엔 옷이 들어 있었습니다. 자기를 돌보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늘 계절감이 희박했던 겉옷이며 티셔츠들을 꺼내 들었다가 나는 고장 난 것처럼 멈춰버렸습니다. 희미하게 세제 냄새가 남은 옷은 그 자체로 당신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티셔츠를 꺼내 입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내 곁에 당신이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아주 얕은수지만, 그렇게라도 당신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게 내 부적입니다. 당신의 흔적을 끌어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오늘을 살아갑니다.
난 당신을 구하고 싶었는데 왜 내가 살아난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신을 구하고 싶었는데, 끔찍한 귀신에게서 벗어나 살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왜 뭍으로 밀려 나온 건 당신이 아니라 나였을까. 당신이 떠난 계절이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희미하게 왜 내가 살아났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난 것은, 당신이 나를 살리고 싶어서였겠죠. 내가 감아 놓은 묵주를 풀고 나를 물 밖으로 밀어낸 거죠. 죽지 말고 가서 살라고. 내가 당신을 구하겠다는 마음보다 당신이 나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나 봅니다. 나는 죽음도 두렵지 않았는데, 당신은 무엇을 걸어 나를 살렸나요.
당신은 내가 살기를 바라여 나를 살렸을 테니 나는 어떻게든 살고 있어요. 이 정도면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나는 당신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혼이라도 좋아요. 넋이라도 좋습니다. 언제가 돼도 좋아요. 이번 생이 아니라도 좋으니, 내 곁으로 돌아만 와주세요.
그런 시구가 있습니다. 적어놓은 것은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쓴 죄.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쓴 것이 벌써 일 년입니다. 나의 그리움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못한 말이 있어요. 편지에도 적을 수 없습니다. 말하고 싶어요. 말하게 해주세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